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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 목차

    도시는 냄새로 기억된다.

    커피 내음이 섞인 골목, 비가 그친 후의 흙냄새, 오래된 서점의 종이 향기, 새벽 도로의 휘발유 냄새까지,

    이런 모든 냄새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고 도시의 기억을 구성한다.

    ‘도시의 미세감정지도’ 시리즈 중 이번 글은 냄새를 통해 감정과 기억을 읽는 후각의 도시학을 탐구한다.

    냄새는 단순한 공기의 조합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며, 도시의 향기는 개인의 추억이자 집단의 정서로 남는다.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도시의 미세감정지도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도시의 냄새는 감정을 자극하는 기억의 언어다.

    ‘도시의 미세감정지도’ 관점에서 냄새가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어떻게 이어주는지를 탐구한다.

     


    Ⅰ. 냄새는 감정의 첫 언어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도시의 냄새는 시각보다 먼저 마음을 움직인다.

    눈으로 보기 전, 코가 먼저 그 장소를 기억한다. 냄새 속에는 시간의 결이, 사람의 감정이 녹아 있다.
    아침의 골목길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섞인 바람이 도시의 하루를 예고한다. 저녁 무렵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구운 고기 냄새와 함께 묘한 안도감이 배어 있다.

    밤이 되면 도시는 또 다른 향기를 품는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 식어가는 비 냄새, 퇴근길 맥주집의 홉 향, 택시가 지나간 뒤 남은 매연 냄새까지 모두 하루의 감정을 마무리짓는 향이다. 냄새는 도시의 리듬을 따라 변하며, 시간의 흐름을 감정의 색으로 칠한다.

    냄새는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다.

    특정한 향기가 뇌 속의 감정 중추를 자극하면, 오래전의 한 장면이 즉시 되살아난다.

    파블로프의 종소리처럼, 냄새는 사람의 무의식 속 감정을 불러낸다. 그래서 사람마다 도시의 냄새는 다르게 기억된다.

    어떤 사람은 한적한 골목의 어묵 냄새를 ‘서울의 향기’로, 또 다른 사람은 비가 내린 아스팔트 냄새를 ‘도쿄의 향기’로 기억한다.

    냄새는 도시와 인간을 감정적으로 연결하는 가장 섬세한 언어다.


    Ⅱ. 냄새로 읽는 도시의 감정

    도시는 수많은 냄새로 이루어진 감정의 지층이다.
    서울의 향은 따뜻한 커피 냄새, 분식집의 김 냄새, 사람들의 체온이 섞인 ‘활기의 향기’다.

    도쿄의 향은 전철역의 금속 냄새와 편의점의 깨끗한 공기, 비가 내린 뒤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만들어내는 ‘질서의 향기’다.

    파리는 크루아상의 고소한 냄새와 오래된 서점의 종이 냄새, 향수 가게의 달콤한 공기가 섞인 ‘감성의 향기’로 기억된다.

    도시별 향기의 정서는 감정의 온도를 결정한다.
    뉴욕은 금속과 커피 향의 ‘긴장된 활력’, 교토는 나무와 향초 냄새의 ‘고요한 사색’,

    이스탄불은 향신료와 바다 냄새의 ‘열정적인 기억’을 품는다.

    이런 냄새의 구조만 봐도 도시의 성격이 드러난다. 냄새가 쌓여 도시의 감정이 되고, 그 감정이 다시 사람의 인상을 만든다.

    향은 시각보다 오래 남고, 청각보다 깊게 스며든다.

    도시의 미세감정지도에서 냄새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지표다. 사람들은 향을 통해 도시를 기억하고, 냄새를 통해 감정을 다시 느낀다.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Ⅲ. 향기의 기억,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

    향기는 마음의 기억을 저장한다.

    오래전 들렀던 책방의 종이 냄새, 첫 출근 날 지하철의 금속 냄새, 비 오는 날 우산 속에서 느꼈던 샴푸 향까지,

    그 모든 냄새가 감정의 조각이 되어 다시 떠오른다.

    냄새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감정을 현재로 데려온다.

    건축가 페터 춤토르는 “공간은 눈이 아니라 코로 기억된다”고 했다. 그 말처럼, 향은 공간보다 오래 남는다.

    오래된 카페의 원두 냄새, 지하상가의 눅눅한 공기, 오래된 나무 기둥의 냄새는 공간을 감정의 장소로 만든다.

    도시의 냄새는 그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감정을 닮는다.

    향기가 쌓인 곳에는 늘 누군가의 시간이 머물러 있다.

    가끔 어떤 냄새는 말보다 더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퇴근길에 늘 지나던 편의점 앞, 어묵 냄새와 젖은 바람의 냄새가 섞인 공기.

    시간이 흘러 우연히 같은 냄새를 맡을 때면, 그 시절의 피로와 희망이 동시에 되살아난다.

    냄새는 감정을 순간적으로 현재로 끌어올리는 가장 빠른 감각이다.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Ⅳ. 후각과 기억의 과학적 연결 - 감정의 메커니즘

    후각은 다른 감각과 달리 뇌의 해마와 편도체에 직접 연결된다.

    즉, 냄새는 언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감정으로 변환된다.

    그래서 우리는 냄새를 맡을 때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향이 기억을 자극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신경 구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도시의 감정 환경에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카페 거리의 커피 향은 각성 효과를 주어 활력을 높이고, 도심 공원의 풀 냄새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비 냄새는 향수와 회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는 ‘나무 향이 풍기는 지역의 주민이 스트레스 수치가 낮다’는 결과도 있었다.

    냄새는 도시의 공기 속에서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조절 장치인 셈이다.

    또한, 후각은 문화적 학습과 함께 작동한다.

    같은 냄새라도 서울 사람에게는 ‘일상의 냄새’, 도쿄 사람에게는 ‘위생의 냄새’, 파리 사람에게는 ‘향수의 냄새’로 다르게 해석된다.

    냄새의 차이는 문화적 기억의 차이이기도 하다. 결국 냄새는 감정의 언어이자, 도시마다 다른 정서의 문법이다.

    도시의 냄새, 기억의 향기로 남다


    Ⅴ. 도시의 향기를 설계하는 사람들 - 감정의 공간 디자인

    오늘날의 도시 설계자들은 후각을 새로운 감정 디자인의 축으로 보고 있다.

    냄새는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정서적 장치이자, 무의식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교토의 거리에서는 전통 향초 향이 바람에 섞여 고요함을 전하고, 북유럽의 도시는 나무 향과 흙냄새가 퍼지도록 녹지를 설계한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에서는 한지와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도록 만들어, 전통적 감성을 일상 속에 녹여낸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도시 향기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쇼핑몰마다 독자적인 향을 개발해 방문객이 냄새로 공간을 기억하도록 유도한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향기 디자이너와 협업해 전시 공간마다 작품의 주제에 맞는 향을 분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냄새는 단순한 향이 아니라 감정의 방향을 설계하는 도시적 장치로 진화하고 있다.

    ‘향기의 도시디자인’은 쾌적함을 넘어 정서를 조율하는 기술이다.

    향이 머무는 공간은 그 자체로 감정의 쉼표가 된다.

    도시의 미세감정지도는 이런 후각적 감정을 새로운 감정 데이터로 기록하며, 도시의 정서적 풍경을 그려낸다.


    Ⅵ. 향기를 기록하는 사람들 - 도시의 기억이 되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향기를 기록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파리의 향수 브랜드들은 거리의 공기를 분석해 ‘도시 향수’를 제작하고, 런던과 암스테르담에서는 “도시의 냄새 기록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냄새를 디지털 데이터로 보존한다.

    서울에서도 향기를 기록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겨울의 석탄 냄새, 봄의 벚꽃 향, 여름의 빗물 냄새, 가을의 은행나무 냄새를 수집해 ‘시간의 향기 아카이브’를 만든다. 냄새를 통해 도시의 계절과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향기를 문화 자산이자 기억의 예술로 확장한다.

    향기를 설계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은 감정을 다루는 또 다른 예술가다.

    그들의 작업은 도시의 미세감정지도를 촉각에서 후각으로 확장시키며, 감정이 도시의 공기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Ⅶ. 향기로 남은 도시 - 감정이 기억을 만든다

    도시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비가 오면 다시 흙냄새가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카페의 원두 향이 골목을 따라 흐른다.

    향기는 도시의 감정을 순환시키는 보이지 않는 공기다. 사람들은 눈으로 도시를 보고, 발로 걸으며, 코로 그 도시를 기억한다.

    냄새는 감정을 저장하는 또 하나의 언어다.

    향수를 맡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 가게 앞 냄새로 되살아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

    —그 모든 것은 냄새가 시간보다 오래 남는 이유를 증명한다.

    감정은 향기를 타고 흐르고, 향기는 감정을 다시 불러낸다.

    결국 도시의 냄새는 기억의 향기로 남아, 사람과 공간을 잇는 다리가 된다.


    <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

    • Peter Zumthor, Atmospheres: Architectural Environments, Surrounding Objects, Birkhäuser
    • Yi-Fu Tuan, Space and Place: The Perspective of Experienc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문예출판사
    • Alain Corbin, The Foul and the Fragrant: Odor and the French Social Imagination, Harvard University Press
    • 장은영, 「도시의 향기와 감정의 기억」, 도시문화연구, 2022